2025년 6월 14일 토요일

【기원전 597년 3월 16일】 유대인의 바빌론 유수 – 예루살렘이 무너지다

기원전 597316유대인의 바빌론 유수 예루살렘이 무너지다

 
기원전 6세기 중반, 고대 중동의 패권을 놓고 벌어진 전쟁의 여파는 한 민족에게 깊은 상처와도 같은 추방의 역사를 남겼습니다.
그 중심에는 바빌론 제국의 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와 유대 민족의 비극적 운명이 있었습니다.
 

1. 예루살렘의 함락과 첫 번째 유수

 
기원전 605, 바빌론 제국을 다스리기 시작한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레반트 지역(지금의 시리아,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에 대해 군사적 공세를 강화합니다.
이후 기원전 601, 이집트와의 전쟁에서 일시적 패배를 겪자, 속국들이 바빌론에 등을 돌리는 조짐을 보였습니다.
그 보복은 거셌습니다. 기원전 597316, 바빌론 군은 예루살렘을 공격해 왕 여호야긴을 포함한 약 1만 명의 유대인을 바빌론으로 강제 이주시킵니다.
이는 훗날 바빌론 유수(Babylonian Exile)’로 불리며, 유대 역사에서 신앙, 정체성, 문학의 전환점이 됩니다.
 

2. 두 번째 침공과 성전의 파괴

 
기원전 587, 바빌론에 남아 있던 유다 왕 시드기야가 반기를 들자, 네부카드네자르는 또 한 번의 침공을 단행합니다.
이번에는 단순한 점령이 아닌, 예루살렘 성전 자체를 완전히 파괴하고 다시 수천 명을 바빌론으로 추방합니다.
놀랍게도, 이민족 가운데에서 유대인들은 신앙과 공동체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아갑니다.
그들이 남긴 기록, 시편, 율법, 예언자들의 말은 유대교의 경전 체계를 확립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3. 신앙의 위기와 예언자들의 메시지

 
바빌론 유수는 단순한 정치·군사적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왜 신께서 우리를 선택하셨음에도 추방되게 하셨는가라는 영적 질문을 던지는 사건이었죠.
이에 대한 답을 예언자 예레미야와 에제키엘이 제시합니다.
그들은 유대 민족이 신의 뜻을 거슬렀기 때문에 심판을 받은 것이라 주장하면서, 회개와 신앙의 회복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메시지는 이후 유대교의 신학 체계를 깊이 있게 발전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4. 바빌론의 공중 정원 또 다른 유산

 
한편, 네부카드네자르는 아내 아미티스를 위해 만든 것으로 전해지는 바빌론의 공중 정원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남긴 문화적 정수 중 하나로 꼽힙니다.
 

5. 유수 이후 : 귀환과 회복의 역사

 
기원전 539, 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 2세가 바빌론을 정복하면서, 유대인들은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허락을 받습니다.
그러나 유수의 기억은 유대인의 집단 기억 속 깊이 각인되며, 오늘날까지도 신앙, 문학, 문화 정체성의 근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6. 추방 속에서 피어난 신앙의 뿌리

 
바빌론 유수는 유대 민족에게 가장 큰 비극 중 하나였지만, 동시에 신앙과 전통을 보존하고 더욱 심화시킨 영적 성장의 계기였습니다.
네부카드네자르의 무력 앞에서도, 유대인들은 문화를 잃지 않았고, 그 뿌리는 현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형성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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