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10일 화요일

【1940년 6월 10일】 노르웨이, 나치 독일에 항복하다

1940610노르웨이, 나치 독일에 항복하다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은 194049베저위붕 작전(Unternehmen Weserübung)’이라는 암호명으로 중립국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침공했습니다. 작전 명칭은 독일어로 베저 강 훈련을 뜻하며, 독일은 영국과 프랑스의 침략 가능성으로부터 중립국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습니다.
 

덴마크 : 짧은 저항과 빠른 항복

 
독일은 덴마크를 노르웨이 침공을 위한 교두보로 삼았습니다. 국경을 접하고 있었기에 침공은 신속하게 이루어졌으며, 덴마크 정부는 조건부 항복을 선택합니다. 이는 내정 간섭을 최소화하려는 의도였으며, 독일은 비교적 관대하게 점령을 유지했습니다.
 
특히 덴마크의 유대인들은 독일의 탄압으로부터 비교적 오랜 시간 보호받았으며, 대부분은 스웨덴으로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덴마크 국왕은 침묵으로 저항하며 매일 정복을 입고 수도를 산책했다는 일화도 유명합니다.
 

노르웨이 : 저항과 망명정부 수립

 
반면, 노르웨이는 격렬하게 저항했습니다. 침공 첫날인 49, 독일 전함 블뤼허호가 오슬로 인근에서 노르웨이 해안포에 격침되었고, 이후 독일군은 주요 비행장과 도시들을 빠르게 점령했습니다.
 
국왕 하콘 7(Haakon VII)와 정부는 항복을 거부하고 북쪽으로 이동하며 망명정부 수립을 위한 움직임을 시작했습니다. 라디오를 통한 쿠데타 선언으로 권력을 장악하려 했던 비드쿤 크비슬링(Vidkun Quisling)은 이후 독일 괴뢰 정부 수반이 됩니다. 그의 이름은 지금도 반역자를 뜻하는 대명사로 쓰입니다.
 

연합군의 개입과 패배

 
노르웨이군은 영국, 프랑스, 폴란드 연합군의 지원을 받아 나르비크 전투 등에서 일시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나, 결국 독일의 기세를 막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노르웨이 정부는 67일 트롬쇠를 통해 해외로 탈출, 이후 런던에서 망명정부를 수립하게 됩니다.
 

항복과 그 영향

 
1940610, 노르웨이는 공식적으로 항복을 선언하며, 2개월간의 저항은 끝이 납니다. 이로써 독일은 북유럽 해상로를 장악하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노르웨이 해안과 덴마크를 통해 스웨덴까지 포위하는 지리적 우위를 점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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