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959년】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완공하다
1. 고대 유대인의 신앙 중심지, 역사와 신화가 만나는 성전 이야기
기원전 10세기경, 고대 예루살렘에 성스러운 건축물이 하나 세워졌습니다.
이스라엘 왕국의 세 번째 왕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의 유언을 이어 받아, 신 야훼를 위한 성전 건축을 마무리합니다. 이 성전은 유대인들의 종교적 중심지이자, 이후 수백 년간 이어진 유대 역사의 상징이 됩니다.
2. 성전 건축의 배경 : 다윗의 계획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한 다윗 왕은 신을 위한 영구적인 거처를 짓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예루살렘의 여부스 사람으로부터 부지를 매입했고, 템플 마운트(현재의 성전산)라 불리는 장소가 그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성전을 직접 짓지 않고, 준비만 해 둔 채 아들 솔로몬에게 작업을 맡깁니다.
3. 성전의 구조와 건축
성전 건축에는 약 7년이 걸렸으며, 기원전 959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 규모 : 길이 약 29m, 너비 9m
- 재료 : 페니키아 왕 히람이 제공한 레바논 삼나무, 석재, 금, 청동 등
- 내부 구조 :
지성소 (至聖所) - ‘계약의 궤’가 보관된 곳. 일 년에 한 번만 고위 제사장이 들어갈 수 있었음
성소 - 제물을 바치는 장소로, 청동 기둥과 제단이 있음
케루빔 조각상 - 거대한 날개 달린 천사상, 궤 양옆에 배치됨
물 저장소 - 의식에 필요한 물을 공급하는 지하 저수지 연결
이 성전은 단순한 종교 건축을 넘어, 이스라엘 민족 정체성의 상징이자 중앙 예배소의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4. 성전 봉헌과 종교적 의미
성전은 완공된 다음 해, 7일간의 축제와 함께 봉헌되었습니다.
이 축제 중 ‘계약의 궤’를 지성소로 옮기며, 성전은 야훼가 거하시는 장소로 선포됩니다.
또한 성전은 유월절, 욤키푸르(대속죄일) 등 중요한 종교행사의 중심지였으며, 제사장 계층의 종교 권위도 함께 확립됩니다.
5. 파괴와 재건의 역사
솔로몬 성전은 수세기 동안 유지되었지만, 바빌로니아 침공으로 기원전 586년에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이후:
기원전 515년 : 유대인들이 바빌론 유수에서 돌아온 뒤 두 번째 성전을 재건
서기 70년 : 로마 제국이 유대 반란을 진압하며 두 번째 성전도 파괴
현재 남아 있는 ‘통곡의 벽’은 두 번째 성전의 서쪽 외벽 일부로 추정됩니다.
6. 성전의 위치, 역사적 논쟁
오늘날 예루살렘의 템플 마운트(성전산)는 이슬람의 성지 ‘알 아크사 모스크’와 ‘바위 사원’이 위치한 장소입니다.
하지만 솔로몬 성전의 실제 위치나 유적은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으며, 고고학적 발굴이 정치적·종교적 민감성 때문에 제한되어 있습니다.
7. 믿음과 유산의 상징
솔로몬 성전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신앙의 중심지로 수세기 동안 유대 민족의 정신을 지탱해 준 상징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 기억은 유대교뿐만 아니라 기독교와 이슬람 신앙에서도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의 상징성과 함께 여전히 세계인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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