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7년 6월 20일】 네덜란드 탐험가 바렌츠의 익사 – 북극해를 향한 도전과 희생
【북극을 향한 길 없는 항해】
러시아 북서부 해안과 노르웨이 북단 사이 해역인 바렌츠 해(Barents Sea)는 16세기 말 북극해 탐험자 빌렘 바렌츠(Willem Barentsz, 1550~1597)의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는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는 신항로, 즉 북동항로(Northeast Passage)를 개척하기 위해 세 차례 대서양을 건넜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항해 : 노바야 제믈랴 상륙
1594년과 1595년 두 번에 걸친 항해에서 바렌츠는 노바야 제믈랴(Novaya Zemlya) 연안을 따라 항로를 탐색했습니다. 모두 빙해에 막혀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유럽인 중 최초로 이 지역 차트 작성에 기여했고, 북극해 정보에 중요한 자료를 남겼습니다.
세 번째 항해(1596~97년) : 스발바르와 생존 겨울
1596년 5월, 바렌츠는 두 척의 배를 이끌고 세 번째 항해에 나섭니다. 북동으로 향하던 중 1596년 6월 10일 베어아일랜드(Bear Island)를 발견했고, 6월 17일엔 스피츠베르겐(Spitsbergen)을 차트에 남깁니다.
그러나 노바야 제믈랴 북쪽을 돌며 탐험하던 중, 배는 빙해에 갇히고 파손됐습니다. 바렌츠와 선원들은 배에서 나무판과 잔해를 모아 거칠고 거대한 목조 대피소(‘Het Behouden Huys’)를 지었고, 기록상 76°N 이상 북극에 인류 최초로 겨울을 생존한 사례가 되었습니다.
이들이 기록한 ‘노바야 제믈랴 효과(Novaya Zemlya effect)’, 즉 태양이 올라오기 전 대기를 굴절해 수평선 아래에서도 태양광이 보이는 현상은, 첫 관측 사례로 학계에 기록되었습니다.
1597년 겨울 후: 귀환 시도와 참극
1597년 6월 빙하가 녹자, 선원들은 생존자 전원(총 17명 중 12명)을 작은 보트를 제작하여 본토를 향해 출항시킵니다. 그러나 6월 20일, 바렌츠는 사망합니다—아마 괴혈병, 동상, 혹독한 환경의 결과로 보이며, 정확한 사망 원인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나머지 생존자들은 7주 후 러시아 페초라 해안을 지나 콜라 반도 근처에서 구조, 10월 말 암스테르담에 귀환합니다. 바렌츠는 배 위 혹은 노바야 제믈랴 섬에 묻혔을 것으로 전해집니다.
【바렌츠의 유산 : 지도 제작과 북극 과학의 밑거름】
바렌츠는 직접 북동항로를 완성하지 못했지만, 정밀한 북극지도와 일지, 북극 해양·기상 데이터를 남겼습니다. 그의 해도는 1870년대 노르웨이 탐험가들이 이를 연구하기도 했으며, 300년 후에도 동 북극 항로 연구에 중요 자료로 거리낌 없었습니다.
【문화 속 바렌츠 : 예술과 기억】
1836년 화가 Portman이 그린 그림 ‘The Death of Willem Barents, 20 June 1597’는 바렌츠의 죽음 장면을 성화 같은 구성으로 묘사하며, 그의 희생과 헌신을 예술적으로 기렸습니다.
또 2011년 네덜란드 영화 《Nova Zembla》는 겨울 생존기 및 극한의 탐험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며, 과거 사건을 현대 문화 매체로 재조명했습니다.
【바렌츠의 위대한 도전과 남긴 발자취】
과학적 의의 : 열악한 상황에서의 관측ㆍ지도작성은 북극 과학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문화적 영향 : 지명과 예술, 극단적 생존 담론의 중심이 되어 네덜란드 탐험 역사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인류 정신 : 불모의 북극에서 일어난 탐험과 생존, 죽음을 통해 인간 의지의 극한을 보여주었습니다.
【추천 읽기와 시청 자료】
Gerrit de Veer의 “The Three Voyages of William Barentsz” (1609년 발간 일지)
영화 《Nova Zembla》(2011)
Portman의 유화 “The Death of Willem Barents, 20 June 1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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