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 6월 20일】 프랑스 혁명의 서막, 테니스 코트 선서
절대왕권에 도전한 국민회의의 결의
1789년 6월 20일, 프랑스 역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순간 중 하나가 발생했습니다. 바로 프랑스 국민회의가 파리 근교의 테니스 코트에 모여 ‘테니스 코트 선서(Serment du Jeu de Paume)’를 한 것입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의사 표현을 넘어서, 절대왕정 체제에 대한 공개적인 도전이자 근대 민주주의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1. 배경 : 신분 제도와 삼부회 소집
18세기 말 프랑스 사회는 엄격한 신분 제도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가장 강력한 권력을 지닌 제1신분 성직자, 그리고 제2신분 귀족, 마지막으로 국민 대부분을 차지하는 제3신분 평민으로 구분됐죠. 그러나 정치적 권력과 세금 부담은 신분 간에 크게 불균형했습니다.
1789년 5월, 루이 16세는 재정 위기를 해결하고자 삼부회를 소집했습니다. 삼부회는 각 신분 대표가 모여 문제를 논의하는 회의였지만, 신분별 투표로 인해 제3신분이 원하는 개혁을 실현하기 어려웠습니다. 제3신분은 인구의 대다수를 대표했지만, 성직자와 귀족 신분이 각 1표씩을 행사해 의견이 묵살될 위험이 컸습니다.
2. 국민회의 결성과 의사당 폐쇄
제3신분 대표들은 신분별 투표에 반발하며, 6월 17일 자신들을 ‘국민회의’라고 선언하고 헌법 제정을 위한 독자적 입법 권한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루이 16세는 이들의 도전을 인정하지 않고, 삼부회 회기 중 국민회의가 사용하던 의사당을 폐쇄하며 회의 진행을 방해했습니다.
이에 국민회의 의원들은 공식 회의 장소가 폐쇄되자 인근 테니스 코트(실내 체육관)에 모여 회의를 계속하기로 결의합니다.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극적인 행동이었으며, 정치권력에 도전하는 하나의 상징적인 선언이었습니다.
3. 테니스 코트 선서의 의미
1789년 6월 20일, 국민회의 의원들은 테니스 코트에 모여 ‘해산하지 않고 헌법을 제정할 때까지 집회를 계속하겠다’는 내용의 선서를 했습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선언했습니다.
“국민의회는 헌법을 제정하고 사회의 질서를 회복시킬 때까지 결코 절대로 해산하지 않을 것이며 필요에 따라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 소집할 수 있다. 가서 왕에게 전하라.”
이 선서는 절대군주 루이 16세에게 국민주권의 원칙을 강력히 천명한 것으로, 이후 프랑스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4. 미라보의 단호한 대응과 왕의 반응
테니스 코트 선서 후 3일 뒤, 왕은 국민회의 해산 명령을 내리는 사신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미라보 공작(Comte de Mirabeau, 1749~1791)은 당당히 이렇게 맞섰습니다.
“우리는 국민의 대표이며 창끝으로 밀어내기 전까지는 해산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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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보 공작 [출처 : 위키백과] |
이 말은 프랑스 혁명 정신을 대표하는 명언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왕은 이 모습을 보고 “그들이 남고 싶다면 남을 수밖에 없지”라며 내부적으로 인정했으나, 국민회의를 무력으로 해산하려는 계획은 여전히 준비 중이었습니다.
5. 테니스 코트 선서 이후 전개된 혁명의 불길
테니스 코트 선서는 프랑스 혁명 초기의 핵심 분수령이었으며, 이후 일련의 사건으로 이어졌습니다.
-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 습격 : 절대왕정에 대한 민중의 분노가 폭발하며 혁명의 상징적 사건으로 자리잡음
- 헌법 제정 및 인권 선언 : 국민회의는 인권선언(1789년 8월)을 채택, 자유와 평등의 원칙을 천명
- 왕권 약화와 공화정 수립 : 1792년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정 체제가 세워짐
6. 테니스 코트 선서가 현대 민주주의에 미친 영향
테니스 코트 선서는 국민주권 원칙을 구현한 최초의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이는 ‘국민이 주인인 국가’라는 근대 민주주의 사상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프랑스 혁명 이후 전 세계 민주화 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 헌법 제정 권한의 국민 이양 : 국민이 직접 법을 만드는 권리를 주장
- 절대군주제에 대한 근본적 도전
- 근대 국민국가 개념 확립의 초석
7. 프랑스 혁명과 국민주권 정신의 계승
1789년 6월 20일 테니스 코트 선서는 단순한 의사 모임이 아닌, 국민주권과 자유·평등·형제애의 가치를 내건 프랑스 혁명의 신호탄이었습니다. 이후 전 유럽과 전 세계에 민주주의 이념이 퍼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이 추구하는 기본 가치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날을 되새기며, ‘국민이 주인인 사회’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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