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17일 화요일

【1815년 6월 18일】 나폴레옹,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다 – 제국의 몰락과 마지막 희망

1815618나폴레옹,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다 제국의 몰락과 마지막 희망

 
1815618, 유럽을 호령하던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워털루 전투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겪었습니다. 이 전투는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한 영웅의 부활과 몰락을 함께 담고 있는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1. 영광에서 추락으로 나폴레옹의 몰락

 
나폴레옹은 유럽을 정복하던 전성기 끝에 1812년 러시아 원정에서 치명적인 실패를 겪습니다. 혹독한 겨울과 병참 부족으로 병력을 잃고 퇴각해야 했습니다. 이어 1813년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연합군에게 패배하며, 그의 제국은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1814, 연합군은 파리를 점령했고, 나폴레옹은 엘바 섬으로 유배되었습니다. 프랑스에는 부르봉 왕조가 복고되며 루이 18세가 왕위에 올랐지만, 왕정 복귀에 대한 국민의 실망은 점점 커져갔습니다.
 

2.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엘바 섬 탈출

 
18152, 나폴레옹은 엘바 섬을 탈출해 다시 프랑스 본토에 상륙합니다. 당시 그를 따르던 병사는 1,000명도 되지 않았지만, 그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총 한 방 쏘지 않고 파리에 들어갈 것이다.”

도중에 맞선 제7연대 병사들 앞에서 그는 홀로 걸어나가 말합니다.

그대들이 원한다면 나를 죽여라.”

놀랍게도 총성이 울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황제 만세!”라는 외침이 터졌고, 군인들은 나폴레옹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이후, 그는 스스로 말합니다.

난 그로노블에 이르기까지 모험가였지만, 그로노블에서 나는 다시 왕이 되었다.”
 

3. 백일천하와 워털루 전투

 
나폴레옹의 귀환은 국민적 환호 속에서 이루어졌고, 역사에 백일천하라는 이름으로 기록됩니다. 하지만 유럽 열강은 즉각 반응했고, 영국,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가 다시 연합하여 그를 제거하려 했습니다.
 
18156, 벨기에 워털루에서 운명의 전투가 시작됩니다. 초기에는 우세했던 프랑스군이었지만, 연합군의 반격과 병력 부족, 전략적 판단 미스로 인해 결국 618, 나폴레옹은 4만 명의 사상자를 내며 결정적인 패배를 맞습니다.
 

4. 황제의 퇴위와 마지막 유배

 
전투 이후 파리로 돌아온 나폴레옹에게 일부 측근들은 재기를 권했지만, 국민의 피로감과 정치적 압력은 컸습니다. 1815622, 나폴레옹은 두 번째로 퇴위하며 정치 무대에서 퇴장합니다.
 
그는 이번엔 더 멀리,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되어, 결국 그곳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5. 나폴레옹의 유산 영웅인가 독재자인가?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영광을 국민에게 선사했지만, 동시에 독재정치와 전쟁의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를 기억하는 방식은 시대와 세대에 따라 달라지지만, 그가 역사의 중심에 선 인물이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의 말처럼, 인생의 승패는 끝이 아닙니다.

나는 항상 감추어둔 무기가 손에 있다. 그것은 희망이다.”

생베르나르 고개의 나폴레옹
생베르나르 고개의 나폴레옹 - 자크 루이 다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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