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6월 17일】 워터게이트 사건이 발생하다
1. 미국 정치사를 뒤흔든 충격적인 스캔들
1972년 6월 17일 새벽,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워터게이트 호텔에서 전대미문의 정치 스캔들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 선거를 불과 5개월 앞둔 시점이었고, 이 사건은 단순한 절도 사건으로 보였지만 곧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정치 스캔들 중 하나로 번지게 됩니다.
2. 침입과 체포
새벽 2시 30분경, 건장한 체구의 남성 5명이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가 위치한 워터게이트 빌딩 6층으로 향했습니다. 이들은 장갑을 끼고 고성능 도청 장비를 소지하고 있었으며, 몰래 사무실에 침입하다 경찰에 적발되어 절도 혐의로 체포됩니다.
처음에는 평범한 범죄로 여겨졌지만, 이 사건을 취재한 「워싱턴 포스트」의 기자 밥 우드워드(Bob Woodward)와 칼 번스타인(Carl Bernstein)이 도청범의 수첩에서 전직 CIA 요원의 이름을 발견하면서 상황은 달라집니다.
3. 닉슨 캠프와의 연결 고리
이틀 후, 두 기자는 이 사건이 단순한 절도가 아니라 당시 대통령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의 재선 캠프가 민주당을 불법 도청한 사건임을 폭로합니다. 이어서 백악관 보좌관이었던 하워드 헌트(Howard Hunt)와 캠프 법률고문 고든 리디(G. Gordon Liddy)가 고발되며 사건은 점차 정계로 번집니다.
닉슨 대통령과 참모진은 사건과 무관하다고 주장했지만, 언론과 시민의 관심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4. 수사와 청문회
1973년, 수석판사 존 시리카(John Sirica)가 이 사건의 재판을 맡으며 피고인들을 끈질기게 추궁했습니다. 결국 피고 중 한 명인 맥코드(McCord)가 입을 열고, 백악관과 재선 캠프가 사건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결정적인 제보는 닉슨 대통령의 집무실 대화가 모두 녹음된다는 전 백악관 보좌관 알렉산더 버터필드(Alexander Butterfield)의 증언이었습니다. 여론은 닉슨에게 녹음 테이프 공개를 요구했고, 특별검사 아치볼드 콕스(Archibald Cox)는 테이프를 공식 요청합니다.
닉슨은 행정특권을 주장하며 이를 거부하고, 결국 콕스를 해임하게 되는데, 이 조치는 오히려 대통령의 수사 방해 의혹을 키우게 됩니다.
5. 대통령의 몰락
미국 대법원은 대통령에게 테이프 제출을 명령했고, 일부 삭제된 채 제출된 테이프에서도 닉슨이 수사를 막으려 한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결국 1974년 8월, 닉슨은 탄핵 직전 스스로 대통령직을 사임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대통령 자진 사임 사례입니다.
6. 워터게이트 사건의 의미
워터게이트 사건은 미국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인 권력 분립과 언론의 자유가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특히,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집요하게 추적한 기자들의 활동은 오늘날까지도 탐사 저널리즘의 전형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미국 정치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지만, 동시에 정의와 진실의 승리를 보여준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