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로왕(백제 제21대 국왕) : 왕권 강화를 추구하다 최후를 맞이한 군주

 

한국 고대사에서 가장 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군주 중 한 명이 백제의 제21대 국왕 개로왕(蓋鹵王)입니다. 그는 고구려의 침공으로 인해 수도 위례성이 함락되고 피살당하는 비극적인 운명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재위기에는 단순히 패망의 그림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왕권 강화를 위한 과감한 정치 개혁과 외교적 시도들이 존재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개로왕의 생애와 주요 업적, 그리고 몰락까지의 흐름을 정리해 봅니다.

 

1. 개로왕은 누구인가?

 

개로왕(蓋鹵王, ?~475)은 비유왕의 아들로, 455년에 부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름은 부여경사(扶餘慶司) 또는 여경(餘慶)이며, 일본 측 기록에는 가수리군(加須利君)이라는 칭호로도 등장합니다. 《삼국사기》는 그가 455년 9월에 즉위했다고 밝히고 있으며, 《일본서기》에는 약간의 시기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백제 왕권의 연속성과 그의 정통성은 인정받는 편입니다.

 

2. 왕권 강화와 정치적 시도

 

개로왕은 즉위 후 왕족 중심의 중앙집권 체제를 강화하려 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왕족인 부여씨 성을 가진 이들을 관직에 다수 등용하였고, 458년에는 송나라(남조)에 사신을 보내 이들에 대한 관직 수여를 요청했습니다. 이것은 백제 내 권력 구조를 왕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의도였으며, 기존 귀족 세력에 대한 견제이자 왕권 안정화의 방편이었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시도는 단기적으로 효과가 있었으나, 결국 귀족 세력과의 긴장을 심화시켰고, 훗날 개로왕 사후 발생하는 정국 불안과도 연결됩니다. 특히 해씨, 진씨 등 기존의 강력한 귀족 세력과의 갈등은 백제 후기에 혼란을 초래한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됩니다.

 

3. 고구려와의 외교와 전쟁

 

개로왕은 고구려와의 갈등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북위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와의 전쟁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472년 백제가 북위에 보낸 외교문서인 「백제상위주청벌고구려표」에 잘 나타나 있으며, 유교적 수사와 고구려의 비도덕성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북위는 백제의 요청을 거절했고, 이로 인해 백제는 외교적으로 고립되게 됩니다.

 

이후에도 개로왕은 군사적인 방어 태세를 유지하며, 북한산성 등의 요새를 보수하고 고구려를 견제했으나, 근본적인 국력의 차이를 극복하진 못했습니다.

 

4. 개로왕의 최후 – 아차성에서의 죽음

 

475년, 고구려의 장수왕은 남진 정책의 일환으로 대대적인 침공을 감행합니다. 고구려군은 수만의 병력을 이끌고 백제 수도인 위례성을 포위하였고, 개로왕은 이를 방어하기 위해 분투했으나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위례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은 아들 문주왕을 남쪽으로 피신시킨 후, 소수의 기병과 함께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구려군에 의해 아차성 아래에서 붙잡혀 처형당하고 맙니다. 《삼국사기》는 그를 잡은 이들이 본래 백제 출신으로 고구려에 귀순한 자들이었다고 전합니다.

 

개로왕의 사망은 단순한 왕의 죽음을 넘어, 한성 백제의 몰락을 의미하는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이후 백제는 웅진(지금의 공주)으로 수도를 옮기게 되었고, 정국은 해씨와 진씨 중심의 귀족 세력에 의해 흔들리게 됩니다.

 

6. 역사적 의의와 평가

 

개로왕은 한편으로는 중앙집권 강화를 추구한 개혁 군주였으며, 한편으로는 무리한 외교와 토목공사로 인해 백성의 지지를 잃은 통치자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고구려의 강대함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백제 왕실의 한계와 내적 갈등을 드러낸 사건이기도 합니다.

 

또한, 개로왕이 북위에 보낸 국서는 오늘날까지 전해지며, 고대 동아시아 외교 문서의 전형으로도 평가받고 있습니다.

 

7. 참고 자료

• 『삼국사기』, 김부식
• 『일본서기』, 기기신화~아스카 시대
• 『위서』 백제전
• 『송서』 이만열전
• 『동문선』 「백제상위주청벌고구려표」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