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년 6월 9일】 로마 폭군 황제 네로의 자살
로마 제국의 5대 황제 네로(Nero)는 잔혹한 폭정으로 악명 높았던 인물입니다. 그는 예술과 권력을 동시에 사랑했지만, 끝내는 민심을 잃고 68년 6월 9일,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로마 제국의 큰 전환점을 알리는 사건이었습니다.
【네로의 출생과 황제 즉위】
네로는 서기 37년,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후처 아그리피나(Agrippina)와 전 남편 가이우스 도미티아누스 아헤노바르부스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그리피나는 아들을 황제로 만들기 위해 클라우디우스와 결혼했고, 결국 16세의 네로는 제5대 황제로 즉위하게 됩니다.
즉위 초기에는 철학자 세네카(Seneca)의 조언 아래 안정적인 정치를 펼쳤으나, 곧 네로의 본성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권력에 취한 폭정의 시작】
59년 : 어머니 아그리피나를 살해
62년 : 황후 옥타비아도 제거
세네카가 정계를 떠난 후, 네로는 권위적이고 독단적인 군주로 변모합니다.
그는 정치적 경쟁자뿐 아니라 개인적인 불만을 가진 이들도 숙청했고, 점차 로마 사회에 공포정치를 퍼뜨렸습니다.
【로마 대화재와 그리스도교 박해】
64년 7월, 로마에서 대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네로 통치의 결정적 전환점이었습니다. 네로는 화재의 책임을 그리스도교도에게 돌려 대규모 박해를 감행했습니다.
역사학자 타키투스에 따르면, 네로가 직접 불을 질렀다는 설도 있지만, 명확한 증거는 없습니다.
【반란, 그리고 자살】
65년 : 원로원 피소의 암살 음모에 대한 과잉 대응으로 숙청 가속
68년 : 갈리아 총독 빈덱스(Vindex)와 에스파냐 총독 갈바(Galba)가 반란을 일으킴
이때 원로원은 네로를 ‘국민의 적’으로 선언하며 등을 돌립니다.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네로는 로마 교외의 별장으로 도망쳐 숨어 있었고, 체포되어 고문당하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외치며 자살을 선택합니다. 그의 나이 31세였습니다.
【역사 속 네로의 의미】
네로의 죽음은 단지 한 폭군의 최후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통치는 권력의 위험성, 민심의 중요성, 그리고 예술과 정치의 충돌이라는 교훈을 남깁니다. 그의 죽음 이후 로마 제국은 극심한 혼란기에 접어들었으며,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몰락이라는 시대의 종언을 맞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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